Loading…

보이지 않는 세계 is unavailable, but you can change that!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시 82:1).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누구일까? 또 그들이 하나님의 결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왕상 22:19–23)? 뱀이 하와에게 말했을 때 하와는 왜 놀라지 않았을까? 야곱의 기도에서 여호와와 그분의 천사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창 48:15–16)? 네피림의 후손(창 6:4)은 어떻게 홍수에서 살아남았을까(민 13:33)? 결박된 영혼들에 대한 베드로와 유다의 믿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벧후 2:4; 유 6)? 바울은 왜 악을 지리적 통치권(보좌, 정사, 통치자, 권위)의 측면에서 묘사하는 것일까? 천사들도 감히 꾸짖지 않는 “영광스러운 자들”은 누구일까(벧후 2:10–11)? ...

1. 우리는 기독교의 역사가 성경의 실제 배경이라고 생각하도록 훈련 받았다. 우리는 상황을 고려하여 성경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1세기 이후 비로소 시작된) 기독교의 역사는 성경 기자들이 겪었던 상황과 다르다. 성경을 해석하기 위한 적절한 상황은 아우구스티누스도 다른 어떤 교부도 아니다. 가톨릭 교회도 아니다. 고대 후기와 중세의 랍비 운동도 아니다. 종교개혁도, 청교도 운동도 아니다. 어떤 색깔의 복음주의도 아니다. 현대 세계도, 현대에 속한 어떤 시대도 성경을 해석하기 위한 적절한 배경이 될 수 없다. 성경 해석을 위한 적절한 배경은 성경 기자들이 처했던 상황이다. 즉, 성경이 ‘생성되던’ 당시 상황이다.1 그 밖의 모든 상황은 성경 기자에게 낯선 것이며, 따라서 성경 해석에도 낯선 것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신조와 신앙고백과 교파적인 특성이라는 것으로 성경을 여과하려는 경향이 만연하다. 기독교의 선조들을 무시해도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선조들의 말
Page 29